통번역학과를 다닌 지난 학기들을 되돌아보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좋든 싫든... 통역/번역이 좋아서 이 과를 선택했고 후회는 없지만 되돌아보는 차원에서 한번 적어본다.


1. 통/번역학과는 외국어를 잘 하고 싶은/배우고 싶은 사람이 올 곳은 아니다

이곳에서의 수업은 대부분이 통역/번역 실습이다.  여기서 영어 단어를 더 배우고 문법 더 배울 생각하면 당신은 수업내내 멍때리다 가야된다. 

번역 수업을 예로 들자. 번역 수업은 정치번역, 기술번역, 영상번역 등 이렇게 세분화 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조를 짜든 개인적으로 하든 번저 번역 과제를 수행한 뒤, 수업 중에서 질의 및 comment를 듣고 개선점을 찾아나가는 식으로 진행 된다. 그 말인 즉, 이미 어느 정도의 통역/번역을 수행 할 수 없는 수준의 외국어 구사능력을 가진 사람이 이 수업을 들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번역/통역을 하다 보면 선택을 해야되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번역과제 하나 하는데도 수도 없이 찾아 온다.  예를 들면 한국어에 없지만 영어에는 있는 개념들을 옮겨야 될 때, 길게 최대한 풀어서 이해 시킬 것인지, 아니면 한국어에 있는 개념들 중에서 최대한 비슷한 것을 사용할 것인지.. 등등...

영상번역 같은 경우는 분량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알듯이 자막 같은 경우는 너무 길게 작성되면 읽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런 것을 생각해서 취사 선택을 해야된다.

이것은 영문학,영어학에도 적용된다.  이미 가지고 있는 영어 실력으로 문학을 읽어내고 영어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내야 한다. 영어를 어느정도 구사하지 못 하면 할 수가 없다. 기본적인 영어도 안 되어 있는 사람이 무슨 시를 읽고 고전 문학을 읽어내겠는가.


2.  통/번역학과는 학부 단위에서 제대로 배우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건방진생각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부터가 정말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수업방식 특성상 학생이 많으면 뭔가 자신이 필요한 comment를 듣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수업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학생이 많아지면 교수는 한정된 시간을 쪼개서 설명하고 발언해야한다.  그러면 자신이 수행한 과제, 자신이 수행한 통역에 대한 지적/comment를 듣고 개선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학부 레벨에서는 학생수도 상당히 많고 그렇다 보니 기회가 적다.  어쩌면 정말 통역사/번역사가 되고 싶다면 좀더 실용적인 학문을 학부레벨에서 전공하며(경제,경영 등) 영어를 틈틈히(어쩌면... 죽어라) 파고 대학원 레벨에서 본격적으로 통/번역을 배움이 미래에 통역사/번역사로서 활동할 때는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학부레벨에서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생각보다 천차만별이다.  정말 잘 하는 사람, 나 처럼 어정쩡하게 구사하는 사람, 이 사람은 왜 이 전공을 선택했나 싶을 정도의 사람.

해외 체류 경험도 정말 다양하다.  정말 오래 살아서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한 사람, 맛만 보고 돌아 온 사람, 나 처럼 아예 다녀온 적이 없는 사람.

그러다 보니 정말 잘하는 사람이 할 때, 중간사람이 할 때, 못 하는 사람이 할 때 그 수업의 질은 달라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학원은 다를 것이다(안가봤으니까.. 추정이다.). 왜냐면 대학원은 입학 시험을 통과한 것 만으로 이미 그 사람의 모국어/외국어에 대한 실력은 검증이 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시험이 어렵다.  우리 학교의 경우 지금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합격한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을 정도니까 말 다했다.


3. 상식이 정말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의 통역사가 되려거든, 그 사람보다 똑똑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사람 만큼 똑똑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지식, 지성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통역/번역은 단순이 말을 듣고 들은 단어들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그런 수동적인 작업이 절대 아니다.  듣고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 다른 언어로 paraphrase 하는 과정이 통역/번역이다.  여기어 '이해'가 정말 중요하다.  내 영어가 아무리 뛰어난 들 이해하지 못 한 것을 통역/번역 할 수는 없다.  실제로 번역 과제를 하다 보면 자료 조사하고 이해하는데 걸리는 시간의 반 이상을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번역/통역사가 하게 될 과제는 정말 다양하다. 정치/경제부터 패션에 이르기 까지... 정말 다양한 지식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연사가 어떤 말을 하는지, 연사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배경지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쩌면 통역/번역사가 필요로하는 지식의 성향이 저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4. 의외로 모국어가 모자람을 느낀다.

모국어니까... 내 평생 써온 말이니까 공부 안해도 되겠지... 천만에 말씀... 하면 할 수록 느낄 것이다.  한국어 정말 어려운 언어라고. 특히 한국어가 어려운게, 한국어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은 그냥 모조리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이 특성 때문에 이걸 다른 언어로 옮길려면 정말 성가신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당장 신문을 읽으면 한국어로 되어 있음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꽤 자주 나온다.  그것을 당장 번역/통역 한다고 생각해보면?.... 이미 한국어로 이해를 하지 못 한 것을 무슨 외국어로 옮기겠는가? 이미 난 그것으로 그 번역/통역은 말아먹은 것이다.


5. 논리가 없는 사람이 정말 싫어진다

어쩌면 3번과 연결될 지도 모른다.  차라리 말을 더듬거나 언어가 서툴러도 좋다.  말이 논리가 있으면 이해를 할 수 있고 그러면 옮길 수가 있다.  그러나 말은 잘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하는 말에 '논리'가 없으면 정말 듣기 싫다.  '논리'가 상실된 말은 이해하기도 힘들고 그걸 옮길 때는 정말 고통이 따른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장황하게' 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 조례 때의 교감선생님의 말이라던가 부대장 같은 사람들의 훈화라던가... 뭐 잘 알 것이다.  쓸데 없는 말 주절주절 하면서 시간 엄청 허비하는 사람들은 듣기도 힘들고 그걸 옮길려면 정말 고통이다.


6. 하면 할 수록 내가 부족함을 느낀다

나의 가장 큰 문제다. 나 같은 경우 영어 전공인데, 배우면 배울 수록... 내가 너무 한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냈던 초기 학기들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이상 내가 지금까지 느낀점들을 적어 보았다. 아직 갈 길이 멈을 느낀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허비하고 있는 순간도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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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미령 2013.07.24 05:10 신고

    저는 어리지만 번역/통역을 꿀꾸고 있는 여자학생입니다 ^^
    이 글 정말 도움 많이됬어요 ^^
    저는 한국말 더 공부해야돼구요.
    암튼 읽은거 머리에 새길게용 감사해요 ^^
    화이팅!

    • Favicon of http://jinju32.tistory.com BlogIcon JINJU32 2013.07.25 18:07 신고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이네요. ^^
      한국어도 열심히 하시고 이미령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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